[80년대 - 외국] steeler - serenade (1983) 모음




( 동영상 출처는 http://youtu.be/CTnOLWw2VBw )

 

이 곡을 처음 들었던 때는 1986년 - 전영혁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심야프로에서였다.

 

당시 전영혁씨는 KBS 2FM 라디오에서 「25시의 데이트」라는 심야프로를 진행하고 계셨다.

 

밤에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그 프로를 알게 된 뒤로 매일밤 그 프로를 듣게 되었다. 중요한 특집이라도 있으면 테입에 녹음해서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아티스트의 앨범을 하루는 A면 전체 연속으로 방송하고 다음날은 B면 전체 연속 방송하고 이런식으로 했기 때문에 열심히 녹음하면 빽판으로나 사야할 앨범을 (그것도 희귀앨범들을) 테입에 차곡차곡 모을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클래식 프로에서도 전집 연속감상이라는 이름으로 (예를 들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부터 5번까지 매일 주루룩 이런식으로) 기획이 있었지만 일반 음악방송에서 그런식으로 기획을 했다는건 그때 이전이나 이후로 들어본적이 없다.

 

( 그뒤 이 프로는 이름과 시간대를 여러번 바꾸고 전영혁씨가 방송사를 옮기기도 하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전영혁씨는 현재 mbc에서 「전영혁의 음악세계」(새벽 2시~3시)를 진행하고 계신다. 예전에 인터넷 라디오프로 사이트가 다시듣기 기능을 제공했을때 까지만 해도 전영혁씨 프로를 가끔 들었는데 지금은 듣지 못하고 있다. 녹음기능을 갖춘 라디오를 사면 아마 다시 듣게 될 것 같다. 그런데 mbc라는게 마음에 걸린다. 예전에 sbs로 옮겼을때도 한참 음악 나오다가 광고가 나오는걸 듣고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KBS에서 방송할때는 광고가 없었다. 전영혁씨의 방송은 광고가 있으면 안된다. 이유는 그분의 방송을 들어보면 안다…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전영혁씨의 방송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유는 밑에서… )

 

당시 잉베이 맘스틴이라는 (당시는 잉위 맘스틴이라고들 불렀다) 기타리스트가 엄청난 속주로 기타계를 평정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잉베이가 녹음한 판들을 이리저리 들어보지는 못했었다.

 

아무튼 이 곡을 25시의 데이트에서 듣고는 Steeler의 판을 샀다. 당시 빽판이었던것 같은데 지금은 LP판들을 모두 버려서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이 곡이 실려있는 Steeler 앨범의 곡들에 잉베이가 처음부터 참여한 것은 아니고 Ron Keel이 이미 녹음한 곡들에 기타연주만 덧씌운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잉베이의 연주는 데뷔와 함께 이미 완성에 근접한  천재답게 찬란하게 빛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잉베이는 너무 오래 살아있기 때문에 손해보는게 너무나 많은 기타리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잉베이가 앨범을 서너장만 내고 랜디로즈처럼 비행기사고로 죽었다면 거의 지미헨드릭스 옆에서 영원히 빛나는 기타리스트로 추앙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잉베이를 단순히 속주 기타리스트라고 말하는건 사실 그가 기타계에 끼친 영향을 너무 소극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타라는 악기의 표현력을 확실하게 한단계 높여놓은 사람들 몇몇 중 한명이라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아무튼 그때 전영혁씨의 「25시의 데이트」는 연말에 특집을 진행했다.

각 악기별로 베스트10을 투표해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거의 4천통의 투표응답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천통이라는 숫자까지 기억하는건 그때 정말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그 직전에 mbc 유명 라디오 프로에서 (별밤이었나 아무튼) 무슨 인기투표였나를 했는데 1만통인가가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심야프로에다가 당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도 않은 곡들만 들려주던 프로에서 4천통이라니! (아트락이나 헤비메탈 어쩌다 어쩌다 국내곡이 나오면 동서남북 이런식의 곡들로)

제대로된 음악프로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 충격은 그 특집의 결과였다.

 

각 악기부문 1위를 레드제플린 멤버들이 차지한 것이다.

보컬은 로버트플랜드 기타는 지미페이지…

그룹 1위도 레드제플린이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그 다음해에도 똑같은 투표가 있었다. 다행히 그 다음해에는 레드제플린 멤버가 1위를 싹쓸이 하지는 못했다. 한 해동안 「25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열광했던 청취자 들은 더 다양한 연주자들을 꼽아줬기 때문이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당시 「25시의 데이트」를 듣던 대부분의 청취자들에게 전영혁씨는 선생님이었고 음악을 알려주는 고맙고 친절한 안내자였다.

레드제플린 멤버들이 1위를 싹쓸이한 이유는 그사람들이 출충해서가 아니라 그나마 아는 이름이 몇 없었고 그들중 하나가 레드제플린이었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1986년 당시의 국내 음악계의 수준이 그 정도였다.

 

잉베이 맘스틴의 곡을 올리면서 이런저런 다른 얘기들이 더 많아졌다.

잉베이가 뚱베이라는 조롱을 듣는걸 볼때면 가슴이 아프다.

alcatrazz 시절의 《live sentence》앨범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데뷔와 동시에 완성에 근접한 천재들은 긴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래도 〈serenade〉이 곡은 아름답다. 당시 스무살밖에 안된 잉베이가 이런 연주를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잉베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스무살에 무었을 했는지부터 먼저 말했으면 좋겠다.

 

다시 듣고 싶다.

전영혁씨가 진행하는 KBS 2FM 라디오 「25시의 데이트」…

엔딩시그널로 나오던 엘레지와 함께 낭송되던 최승자의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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